어린아이가 태어나서 한걸음 한걸음 이동하는 것으로 삶은 시작되어 점점 이동거리가 짧아지면서 인간의 삶은 마무리 된다.
이동을 생각하면 걷기, 자동차, 교통, 철도, 배, 비행기 등 많은 단어가 생각난다. 서울, 즉 거대도시로 향하는 교통은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와 있으며 교통의 쾌적함이 생활의 쾌적함과도 이어짐을 우리는 모두 경험하고 있다.
이에 정희원-전현우 작가는 노년 내과의사와 교통 철학연구자로 서로에게 이동에 대한 견해를 주고 받으며 이책은 시작한다.
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재미로 한가지 주제에 두 작가의 견해가 편지로 이어지면서 점점 이 책에 다가가게 된다.
재미로 시작한 읽힘은 개인에서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어 기후에 이르기까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깊은 고찰이 이루어 짐을 알게 된다.
일상속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어지는 편지는 딱딱하게 여겨질 주제가 부드럽게 읽혀진다.
출퇴근의 일상으로 시작하여 이동의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 방법, 미래를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자동차, 걷기, 지하철 타기로 이동하는 생활속에서 탄소 배출이나 기후 위기나 각자의 삶의 질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실내에서의 이동은 걷기로 이루어진다. 400m를 스스로 걷지 못하면 누워서 노년을 보내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교통 철학연구자 작가 전현우의 시선과 관점은 거대도시로 이어져 있는 도로, 철도, 자동차에 의한 탄소 발생에 어떻게 접근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친절하게 접근을 도와주고, 노년 내과의사인 정희원은 거대도시 속의 움직임이 건강에 미치게 되는 관점이나 삶의 질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우리 모두는 입시 지옥, 수강신청 전쟁, 기차표 오픈런, 출퇴근 지옥, 소아과 오픈런, 아파트 영끌, 생존을 위한 극심한 투쟁, 여기저기서 하이빔과 경적이 난무하는 정체구간 등 이 도로에 갇힌 이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을 모른척 하고 사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진지하게 이동에 대한 생각을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삶은 점점 더 이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동의 생활 모든 측면에서 이어져 있음을 알려주는 단어가 ‘모빌리티’이다. 성인, 노인, 장애인 등에게 좀 더 나은 대중교통 시스템을 제공하는 일이, 바로 이동성의 문제는 건강, 삶의 문제에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존 어리의 ‘모빌리티(이동성)’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하나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여러 순환고리들을 통해 많은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붕괴하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모빌리티들 중 자동차 시스템을 통제함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하는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제대로 잘 작동하는 세계이다.
작가 전현우는 22세기 암울한 미래의 이미지 사이를 오가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모빌리티’라는 말 속에 흔적만 남아있는 반성적 정신을 보여준다.
접근성을 울바르게 고려한 대중교통 환경이 잘 조성되어야 이동성 장애를 감소시킴으로써 이동성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원활한 사회활동을 위한 기능으로 사용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출퇴근 시간에 종종 언급되는 지옥철이나 만원버스나 스트레스와 피곤을 야기시키는 문제들의 접근, 거대도시로 향하는 출퇴근의 모습들은 행복지수를 많이 낮추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동성의 감소와 힘듦은 질병과 노쇠를 불러온다는 연구도 많이 있다.
자동차보유세가 비교적 가벼운 우리나라에서는 탄소 배출을 증가시키는 자동차, 큰 자동차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어 자동차로 인한 탄소 배출의 기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태세를 위하여 자동차보유세를 무겁게 내게하는 예시국들의 사정을 보면 걷기가 더 일상화 되어 기후위기를 극복해 나가는데 성공하는 사례들이 있다.
우리나라 현실은 아직 이런 접근에 시민들의 생각이 열려 있지 않다. 정책을 변화시켜 적어도 어두운 미래를 후손들에게 남기는 범례를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자동차 회사들의 기만광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벤츠는 202억원을 부과한 조치가 있었다는 것을 대중들은 잘 알지 못한다. 깨끗하고 멋진 이미지인 벤츠가 실은 오염물질을 내뿜는 ‘똥차’임이 밝혀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환상이 실제로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곰곰히 따지기를, 좀더 침착하고 냉정하게 자동차를 바라볼 수 있도록 더 많은 정보와 관점을 제시하고 책임있는 주체가 되길 작가는 기대한다.
이러한 것에 답중의 하나로 철도를 들 수 있는데 철도를 증가시키는데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도 깊은 고민으로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옥같은 출퇴근 교통이나 미래를 위협하는 탄소 배출에 대한 한가지 답으로 거대도시를 해체하고 자족도시를 건설하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도시와 우리 삶의 장기적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철도망을 더 잘 활용하려면 효율의 중층적인 의미를 반성하는 작업이 필수임을 말한다.
아프리카의 한 종족은 이동과 운동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걷기를 운동으로 부르는 ‘걷기운동’이라는 말에 약간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신체활동은 따로 ‘운동’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거대도시이다.
번쩍이는 거대도시의 설계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가속노화의 악순환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거대도시 전체를 바꾸려면 자동차 이외의 대안을 생각하기 어려운 바깥쪽 난개발지역까지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새들의 시점을 빌려 볼 때 대중교통의 흐름은 똟고 승용차의 물량은 적정 수중에서 관리해야 한다.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대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이동공간속에서도 구체화해야 한다.
해법에 가까운 것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철도’와 ‘걷기’에 매력적인 공원이다. 도시의 구조는 손모양인데 녹지와 시가지가 서로 손을 맞잡은 듯하여 작가는 이를 ‘깍지모형’이라 부른다.
기후대응에 어느정도 성공화 도시는 결국 깍지모형과 같은 모양으로 변모해 있음을 작가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숨가쁜 변화 속에서 거대도심내의 이동을 어떻게 구상하고, 어떻게 구현해 내는지가 우리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넷제로(Net-Zero) 달성까지도 좌우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야할 것은 개인과 사회 모두가 바뀌는 일만 남아 있음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