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에서는 매월 3.1 포럼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인사차 참석했지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에 그만 빠져버렸다. 그분들의 거룩한 에너지에 접속하는 귀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설 선생님을 처음 뵌것은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이었다. 헤이그 특사단의 대표가 이상설 선생님이었는데, 당시에는 헤이그에서 돌아가신 이준 열사가 더 기억에 남았었다.
박민영 님이 지은 ‘이상설 평전’을 읽고 이상설 선생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나는 기쁘게 3.1포럼에서 토론자로 발표했다. 토론문의 제목을 ‘길이 끝난 곳에서 스스로 길이 되다’로 정했다.
독립운동의 노정에서 이상설 선생님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고, 또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고, 길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상설 선생님의 삶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주었다며 반가워 했다.
이상설 선생님은 러시아 우스리스크에서 돌아가셨다.
그분의 유언,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갈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우고 그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에 제사도 지내지 말라”
독립운동 동지들과 유족은 유명을 받들어 시신을 화장하고 수분하(현 라즈돌리노예강)에 뿌렸다. 그의 유품과 유고를 모조리 거두어 불태웠다. 자신에게 무한 책임을 묻고 모든 삶의 흔적을 지우려는 고인의 뜻대로 했다.
나는 천재이며 독립운동의 대부이신 이상설 선생님의 흔적이 사라진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선생님의 조카가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몇권의 책을 챙겼다고 해서 좀 위안이 되었다.
3.1포럼에서 사회를 보신 전 독립기념관장 이문원 님이 고서 몇권을 가져오셨다.
나는 눈이 번쩍 뜨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몇권의 책을 챙겼다는 분의 아드님이 바로 이문원 님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이렇게 귀한 책을 실제로 만져보고 사진을 찍게 되다니…

법학에 관한 책. 지금이라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리라.
수학에 관련된 책도 여러권 있었다. 붓으로 쓰여진 숫자, 공식이 신기하다. 마음이 간절하면 우주가 응답한다는 말이 들어 맞았다.
내가 선생님의 유품이 모두 불태워진 것을 너무나도 안타까워 했더니 이렇게 실물을 영접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행운을 벼락처럼 즐긴 날, 나는 행복했다.
정명애 KCEF 자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