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하여 이후 쭉 많은 소설을 남겼다. 노후에 접어들며 마지막 순간까지 써낸 39편의 시를 모아 딸이 책으로 엮어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수백장의 파지를 내는 열정으로 글을 썼던 박경리 작가의 노후에 쓴 이 시들은 많이 고치지도 않고 물 흐르듯이 써 낸 시라 한다.
어느 경지에 이른 할머니가 들려 주는 듯한 이야기로 내게는 읽혀졌다. 일기 같기도 하고, 90 노모가 들려주는 젊은시절의 이야기인 것도 같은 이 시들은 삶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듬쁙 담겨져 있다.
고난과 시련도 담담히 이야기 같이 담겨있지만 그마저 따뜻하게 다가오는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그대로 다가온다.
네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시집으로 1.옛날의 그 집 2.어머니 3.가을 4.까치설 각각의 장은 옛집을 그대로 보는 것도 같고, 옛 할머니들의 심지 굳음이 우리들의 할머니 이야기 같기도 하다.
노후를 옛날의 그 집에서 혼자 살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며 살며 적막만이 지켜주던 그 집에서 책상 하나와 펜 하나로 무서움을 이겨내고, 모진 세월 가고 작가는 말한다.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작가의 아버지 18세, 어머니 22세에 작가는 태어났다. ‘두 눈이 눈깔사탕같이 파아랗고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꿈’ 이런 태몽을 안고 태어났다.
초저녁이라 팔자가 셀것을 점쟁이가 종종 말하기도 했지만 딸이라 섭섭한적은 한번도 없다는 어머니의 이야기, 외할머니, 친할머니의 이야기가 이 시집에 담겨 있다.
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그들의 인생은 힘겨워 보일 법도 한데 박경리 작가가 시에 담아낸 그들의 이야기는 아련하게 드라마의 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바느질과 옷 만들기를 잘했던 박경리 작가는 노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손에서 놓게 된다. 남이 싫어하는 것도 안하고, 내가 싫은 일도 하지 않은 대쪽같은 성격의 작가는 이 성격이 바꼈다 한들 살기가 더 편안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을거라고 단언한다.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육신은 녹슬고 마음이 녹슬고 폐물이 되어가니, 생명의 존재감을 느끼려면 능동성의 활동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일이 보배라는 옛사람의 이야기도 말해준다.
<어머니의 사는 법>이라는 시는 어머니의 살아내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긴 이야기로 쓰여져 있다.
각자의 사는 법은 하나의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어머니가 사는 법을 보면 토지의 각 장면들에 많이 스며들어 있음이 느껴진다. 작가의 삶과 주변의 삶을 오래오래 남을 소설로 써낸 근원이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거 같다. 삶의 지혜가 시마다 담겨 있다.
편안하고 잔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의 다져진 삶과 묵은지 같이, 결국에는 참 맛을 남기는 언어와 생각때문인 거 같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읽고 또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