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에서 만든 창작 오페라이다. 연출 정영두, 대본과 작사 배삼식, 작곡 최우정, 지휘 송안훈.
1950년대 경북 고택의 안주인 김씨의 환갑이 배경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병약한 큰아들은 세상을 떠났고, 둘째 아들은 좌익으로 몰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사내들이 떠난 집은 5명의 여자가 지켜왔다. 김씨,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 고모 권씨, 행랑어멈 독골할매.
김씨의 환갑잔치를 위해 큰딸, 작은딸, 막내딸이 찾아온다. 그리고 독골할매가 데려다 키운 홍다리댁도 와서 여자만 9명이 모인다. 이들은 모두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다. 독립운동, 좌익활동, 억울한 옥살이, 남편의 죽음, 이루지 못한 옛사랑 등 모두가 사연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화전가’ 오페라는 눈물과 웃음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어 빛을 밝힌다.
큰딸이 가져온 초코렛, 커피, 설탕가루 등 신문물을 신기해하면서 즐기는 대사와 노래는 유쾌하기 그지없다. 무대위 아홉 여자가 설탕을 한움큼씩 받아들고 행복해하는 의미를 요즘 젊은이들이 알까? 어린 시절 명절 선물로 들어온 설탕표를 가지고 설탕을 바꾸러 갔던 기억과 설탕에 담긴 기쁨이 소환되었다. 쾅! 쾅! 누가 문을 두드린다. 그 장면에서 내 가슴이 철렁하면서 더럭 겁이 났다.
아~ 아버지의 친구 이생원이 환갑잔치를 위해 보내준 소주 항아리. 여인들은 놀란 가슴을 소주의 향으로 달랜다. 나의 불안도 기쁨으로 전환되었다. 오페라의 스토리가 찰떡처럼 쫀득쫀득하다.
9명 여인의 상실 스토리
김씨 – 서간도에서 패물을 팔아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고생
큰 며느리 – 병약한 남편을 떠나보내고 소복차림
둘째 며느리 – 임신중인데 전향서를 거부하고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남편
큰딸 – 동경유학 후 이북으로 간 남편
둘째딸 – 이리 저리 떠나가버린 사내들에 대한 원망
막내딸 – 오빠가 잡혀간 날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듣고 마을못에 뛰어들었던 일
고모 – 결혼 두달 만에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독골할매 – 서간도에서 고생하면서 좋다는 남정네를 떠나보냄
홍다리댁 – 4번을 결혼했으나 남편을 모두 잃고, 자기를 버린 친엄마 만나기를 거부
그렇지만 9 여인은 화사한 차림으로 화전놀이를 맘껏 즐기고 헤어진다.
아프지만 견딜 수 있고, 잠깐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9명의 여인이 주인공인 ‘화전가’. 나는 9여인에게 고운 빛깔의 옷을 입힌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각자의 사연을 노래로 부르게 해준 것도 고마웠다. 어쩌면 하나같이 그리도 노래를 잘하는지 정말 들을만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힘으로 삶을 이끌어간 여인들이 장했다.
커튼 콜에서 힘차게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시대의 아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게 펼쳐보인 제작자들, 연기와 노래가 멋들어진 배우들! 우리나라 창작오페라의 한 획을 그을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