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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책] 전념

 

 

 

전념하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무한탐색의 환경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혼란에 빠진다.

삶을 지탱하고 의미 있게 사는데 ‘전념’이 어떤 큰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전념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추천의 글을 보면, 인생을 스크롤 하면서 얕은 곳에 머물수도 있고, 아니면 선태의 폭을 제한함으로써 더 깊이, 더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는 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말이 공감된다.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 이것이 지금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을 폴란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liquid modenity)’라는 표현을 했다.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전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두기를 원치 않으며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른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액체근대다.

하지만 진정으로 삶에 필요한 것은 무한탐색에서 벗어나, 마음에 드는 방을 고른뒤 그곳에 정착한 삶에서 자극을 받는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추구하는 생활방식은 액체근대속에 허우적대는 현대 사람이 꼭 다시 생각할 문제이다.

예를 들자면 무한탐색 모드에 있는 청년들에게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열 명 중 몇명은 여름캠프라고 대답한다. 여름캠프는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온 공동체 활동이다. 관계가 끈끈해져 공동체로서 유대감을 느꼈을때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한다.

공동체에 속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후회에 대한 두려움, 유대에 대한 두려움,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선택의 혼란으로 빠진다. 깊게 생각하여 자발적 전념하기를 선택하면 지금보다는 좀 더 길게, 좀 더 진득하게 그리고 스스로 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전념할 수 있을 만큼만 두려움을 벗어내면 의미 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전념하기는 허무주의와 근본주의 그 중간에 있다. 부분적인 확신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시도하고, 구현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다.

전념하기는 우리 안에서 믿음이 유기적으로 자라도록 한다. 더 깊이 전념할수록 무엇이 아름답고, 좋고, 진실인지 서서히, 그러나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한 사례로 결혼생활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헌신’이라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가 필요하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전념하여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면, 마트 체인점 ‘트레이더 조’이다. 기존 상식에 어긋나는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카테고리당 판매상품은 물론 전체상품 수도 적었고, 브랜드가 없는 제품만 판매했으며, 온라인물이나 판촉행사도 열지 않았다. 결국 몇 가지 핵심적인 가치에 대한 헌신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 현대사회에서는 많이 결여되어 있는 것에 대한 반등이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융통성이 오히려 행복을 방해할 때도 적지 않다.

자유는 우리 정체성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것은 ‘헌신’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속박에서 벗어난 다음 무언가를 하기를 원한다.

전념하려면 ‘전념하기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 먼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력도 있어야한다.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 새롭지 않아도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는 근성, 관계를 지탱하는 데에 필요한 열정도 중요하다. 열정이 있으려면 존경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념하는 능력, 즉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계속해서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위대한 사건이었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사건’을 생각해보면, 흑인인 ‘로자 파크스’가 백인구역에 앉았고 이 사건은 장장 381일간 계속되었다. 13개월간 같은 행위를 유지하려면 감정적인 분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헌신’이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보이콧을 이끌었는데, 이들이 견뎌온 시간과 노고가 1950년대와 60년대에 시민 평등권이 일어나게 되는, 땅을 가는 역할을 해냈다. 삶의 대의와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숭고하다. 그러나 일상에 대의와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그보다 더 숭고하다.

선택의 무한시대에 선택에 도움을 주는 방법에 ‘이냐시오적 식별’이라는 것이 있다. 선택지의 장단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느끼는 것이다. 즉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한 선택지를 고른다고 상상할 때 내 마음이 그것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평온하게 느끼는가, 아니면 불편하고, 불안하고, 신의 뜻과 멀어진다고 느끼는가? 이것을 고민해야한다.

감정은 이성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까지 닿을 수 있으며, 이냐시오적 식별은 우리의 수신기가 그 정보를 더욱 더 선명하게 수신할 수 있도록 주파수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자기희생을 위한 자기통제’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통제를 거쳐 자기희생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과제다. ‘전념하기’를 통하여 삶의 의미가 더 깊어지기를 원한다.

김효선 KCEF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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