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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책] 게으름에 대한 찬양(세상을 읽는 노 철학자의 지혜)

 

 

 

버트런드 러셀의 에세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으름’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러셀은 이 글에서 무조건적인 노동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의 가치관을 비판하며, 인간에게는 적절한 여가와 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인간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여가 속에서 인간의 문화와 창의성이 발전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러셀은 역사적으로 노동이 미덕으로 강조되어 온 배경을 설명한다.

과거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지배계층이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다수의 노동자들은 긴 시간동안 일해야 했다. 이러한 체제에서 노동은 ‘덕’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였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이 크게 놓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시간이 줄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이유는 사회가 여전히 ‘많이 일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러셀은 이상적인 사회를 예를 들며 하루 4시간 노동정도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생산 능력으로 보면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그렇게 많은 노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은 남는 시간을 독서, 예술, 공부, 인간관계등 다양한 활동에 사용할 수 있고, 사회 전체의 문화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여가’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여가는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이며, 문명 발전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철학, 예술, 과학 등 많은 위대한 성과는 바로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무조건 바쁘게 일하는 삶은 오히려 인간의 잠재력을 억누를 수 있다고 러셀은 말한다.

이 글의 주요 요지는 게으름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균형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러셀은 ‘일을 줄이고 여가를 늘리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창의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에도 이 글은 과도한 경쟁과 노동에 지친 현대인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이 일해야 하는가, 그리고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글을 통해 나타나는 러셀의 사상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적 철학이다. 그는 사회제도나 관습이 인간을 억압할때 그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872년 영국에서 귀족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조부모에게서 성장했다.

학문적으로는 수학과 철학을 함께 연구하며 놀리학과 분석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수학의 기초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연구로 유명하며, 이러한 업적으로 현대 논리학과 철학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러셀은 학문적 활동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인간의 자유와 합리적 사고를 강조했다. 이러한 공로로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위원회는 그의 저술이 인간의 자유와 인도주의적 이상을 옹호한 점을 놓이 평가했다.

러셀의 글은 복잡한 철학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역시 그러한 장점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그는 단순히 철학적 이론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가치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인간다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생각하게 하며, 우리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히려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이익을 가져오는 것만이 바람직한 행위라는 관념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렸다.

직업상의 일에 써 버리지 않은 시간은 생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성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나이 많고 박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맞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대의 생산방식은 점점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고 노 철학자는 말한다.

김효선 KCEF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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