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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한류의 중심에 선 한글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전 구글 회장은 한국이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배경이 한글이라고 주장하였다. 구글, MIT, 스탠퍼드로 구성된 언어학 공동 연구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글은 컴퓨터와 AI 환경에 최적화된 문자다. 일정 공간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정보 밀도, 입력 속도, 문자 인식 정확도, 학습 효율성에 있어서 한글이 압도적으로 탁월한 평가를 받았다. 영어의 알파벳은 26개 문자로 26개의 소리만을 표현하고 한자는 각각 수만 개를 암기해야 하지만 한글은 24개 문자로 1만 개 이상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글은 단순히 소리를 기호로 압축한 문자가 아니라 소리를 정보 단위로 압축한 일종의 모듈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원리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코딩의 작동 방식이나 AI의 학습모델과 유사하다.

유네스코가 ‘훈민정음해례본’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고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한 이유는 한글이 인류가 만든 가장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한글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원, 창제 원리, 설계도가 밝혀진 문자로 규정하였다. 한글사용 설명서인 ‘훈민정음해례본’에 따르면 문자를 알아도 정확히 읽을 수 없는 알파벳이나 3,000개 이상의 문자를 암기해야 하는 한자와 달리 한글은 하루면 읽을 수 있다. 훈민정음을 한글로 풀어쓰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다. 한글은 한자처럼 지배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고안된 문자인 것이다. 문자가 없던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한 지 1년 만에 부족 전체가 글을 읽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인공지능 시대를 예견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소리와 언어의 본질, 소통의 본질을 본 것이다. 한글은 이제 문자를 넘어서 정보 전달 시스템이다. 베이징 대학 문자 학 연구소는 한글을 ‘규칙 기반 확정형 문자’라고 규정하였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어 있지만 다른 음소문자와는 달리 음절 단위로 결합하여 표기한다. 한글의 모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문자로 반영하며 천( • ), 지(ㅡ), 인(ㅣ) 삼재(三才)를 조화시키는 철학적 기초를 지니고 있다. 한글의 자음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고안된 소리의 설계도이다. 한글의 자음은 입속에서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기본 자음인, ㄱ, ㄴ, ㅁ, ㅅ, ㅇ은 발성기관을 구성하는 혀, 입술, 치아, 목구멍을 나타낸다.

다른 문자들은 오랜 기간 자연적 발생 과정을 거쳤으며 문자와 소리 사이의 인과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알파벳의 D와 T는 발음이 비슷하지만, 글자 사이의 구조적 연관성은 없다. 한편, 한글은 소리가 강화되는 물리적 특성을 획을 더하는 시각적 기호로 표현한다. 한글의 자음 체계는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여 기본 글자 5개만 알면 나머지는 그것으로부터 확장되는 구조를 이룬다. 예를 들어 ‘ㄱ’은 ‘ㅋ’으로, ‘ㄴ’은 ‘ㄷ’을 거쳐 ‘ㅌ’으로 소리가 강해질수록 글자도 강화된다. 여기에 자음과 모음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의 배치와 방향이 각기 다른 음가를 형성한다. 이것은 소리의 성질이 눈으로 보이는 언어학의 혁명이다. 이러한 원리는 매우 논리적이며, 문자와 발음의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부는 2011년 한글 문자판 국가표준을 제정하고 한류의 글로벌 확산과 한글의 세계화를 목표로 한글 문자판의 국제표준화 작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로 2014년 국제전기통신연합 표준화 회의(International Team for Implantology)에서 우리나라 국가표준인 천지인 문자판이 라틴문자 이외의 문자로는 처음으로 국제표준으로 추가되었다. 이제 한글의 세계화는 한류의 확산뿐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외국어 발음표기의 통일성과 국제적 호환성을 보완하면 한글은 문자의 기능을 넘어서 세계가 공유하는 정보 전달 매체로 진화할 것이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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