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며 문득, 부모님의 시간이 떠올랐다. 어릴 적 어렴풋이 들었던 ‘통일’이라는 말, 뉴스 속에서만 존재하던 분단의 현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말없이 견뎌온 세대의 얼굴들. 지난해 9월,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리사이틀홀 무대에 서서 남과 북의 가곡을 부르던 순간, 그 기억들이 음악처럼 조용히 되살아났다.
‘2025 남북 가곡의 밤’은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이 음악감독을 맡아 기획한 공연으로,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KCEF, 이사장 곽삼근)의 장학사업 지원을 통해 마련된 뜻깊은 무대였다.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불러온 노래를 통해 한민족의 정서와 동질성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무대에는 테너 민현기, 메조소프라노 최종현, 베이스 장영근,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의 성악가가 함께 올랐다. 각자의 길과 배경은 달랐지만, 노래 앞에서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비목’, ‘보리밭’, ‘내 맘의 강물’, ‘임진강’, ‘백두와 한라’, ‘그리운 금강산’….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객석과 무대 사이에는 설명할 필요 없는 공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공연에는 MZ세대 학생들과 탈북민, 그리고 일반 시민들 100여명이 함께했다. 분단은 젊은 세대에게 체험의 기억이 아닌, 교과서 속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은 세대를 건너 감정을 전달한다. 부모 세대가 가슴에 품고 살아온 통일의 염원과 그리움이, 노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는 순간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앙코르 무대에서 네 성악가의 화음으로 부른 ‘고향의 봄’과 ‘거룩한 성’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어 ‘동무생각’, ‘백두와 한라’, ‘그리운 금강산’으로 이어진 무대는 확신을 줬다. 남과 북의 가곡은 서로 다른 언어가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하나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분단된 현실은 때로 MZ세대에게 관심 밖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문화를 듣고, 같은 노래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평화란 무엇인가, 통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음악회가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장학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음악이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증명했기 때문이다. 음악은 무대를 넘어 시민과 세대를 잇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을 연결했다.
가곡은 오래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오히려 미래를 향해 있다. 지난해 가을, 그 무대 위에서 느꼈던 울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평화는 거창한 구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함께 부르는 노래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