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보이지 않는 손으로 ‘궁중예절 자문’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단법인 우리문화진흥원 부원장이자 40여 년간 전통 예절과 다도 교육의 길을 걸어온 황영애 선생님이 있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혼례 대첩’, ‘이강에 달이 흐른다’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와 제작진에게 궁중예절을 지도해 왔다.
“궁중 예절교육을 맡았는데 큰 사랑을 받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담담한 말 속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장인의 깊이가 배어 있었다.
▲우리 문화와 운명처럼 만난 40년 여정, 사람을 향한 마음
황영애 부원장의 성장 과정에는 지역사회교육운동의 경험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81년 큰아이가 신월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지역사회 어머니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월례회에 참석하는 정도였지만, 1984년 교육분과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1985년에는 여러 차례 사양 끝에 어머니회장을 맡으며 지역사회교육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당시 그는 월례회와 바자회, 경로잔치, 회원운동회, 고아원 방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호흡했다. 그는 “실수도 많았고 눈물도 흘렸지만,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어머니회장들의 모임인 ‘귀연회(歸燕會)’에 가입하면서 교육자로서의 길은 더욱 구체화됐다.
1980년대 말, 재단 명예이사장을 중심으로 부모교육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귀연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사 교육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예절강사교육을 접하게 됐다.
황 부원장은 “예절교육을 받으면서 마음이 청청한 소나무에 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녹슨 빗장이 열리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이후, 예절과 다도, 현대예절, 인문교육사, 의례코칭사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전문성을 넓혀갔다. 강의 활동 역시 전국으로 확대됐다. 2001년 강사연합회장을 맡았고, 이후 KACE 예절다도교육원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지역사회교육운동의 전문 지도자로 성장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도 멈추지 않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동 대학 학부에서 겸임교수를 맡았으며, 한양여자대학교-목포대학교-오산대학교 등에서도 강의를 이어갔다. 현재는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도와 의례 분야에서도 깊이를 더해왔다. 가락국-고구려-백제-고려-조선 등 시대별 행다(行茶)를 연구하고 집례(執禮)를 맡아왔으며,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7호 이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와 전남광주전통문화관, 인도네시아 등 국내외에서 성년례-혼례-헌다제-세종 희우정제 등을 집례하며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힘써왔다.
코로나 시기에는 오랜 현장 경험을 정리해 『한국의 의례』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원래 자신 없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지역사회를 만나고 끝없이 이어진 배움의 길을 걸으며 오늘의 내가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예절은 형식이 아닌 마음의 표현”
선생님은 예절의 본질을 분명히 말한다.
“예의 참모습은 형식을 빌려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는 형식만 강조하는 태도도,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도 모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마음은 반드시 표현되어야 하며, 그 표현 방식이 바로 예절이라는 것이다.
특히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성의 가치와 예절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표현될 때 관계는 비로소 이어진다.’는 전통적 가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궁중예절의 정수, ‘기거동작’
영화와 드라마 자문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거동작(起居動作)’이다.
“궁중예절의 핵심은 품위 있는 몸가짐과 예절입니다.”
왕은 위엄 있게, 왕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궁녀는 몸을 낮추되 고개를 지나치게 숙이지 않는다. 이러한 섬세한 차이는 인물의 신분과 관계,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황 부원장은 “배우의 작은 손짓 하나, 걸음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며, 그 차이를 정확히 살려내는 것이 자문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예의 바른 사람이 결국 경쟁력을 갖는다”
그는 오늘날 교육 현실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공부를 잘해도 인성이 바르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습니다.”
예절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삶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바른 인사와 태도, 상대를 배려하는 말 한마디가 신뢰를 만들고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예절 바른 아이는 이미 성공의 중요한 덕목을 갖춘 것이다”고 강조했다.
▲40년을 지탱한 힘, 가족
오랜 시간 강단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족의 지지가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새벽마다 공항까지 배웅하고, 늦은 시간 귀가를 기다려주던 가족의 배려는 그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온 시간은 그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전통은 ‘지키되, 변화해야 한다’
선생님은 전통을 고정된 것이 아닌 ‘살아 있는 문화’로 바라본다.
“전통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이를 ‘변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무조건 지키는 것도, 무작정 바꾸는 것도 아닌 균형 있는 계승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으로 이어지는 문화, 그 미래를 향해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조용히 바람을 전했다.
“우리 전통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 가치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결국 마음임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 바로 ‘예(禮)’라는 사실을, 지역사회교육운동에서 출발한 40여 년 예절 교육의 길 위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