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독립선언절 제정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2월 25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 주관,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후원으로 열렸으며, 삼일절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명칭 변경 논의를 본격화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우리나라 5대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다. 이 가운데 삼일절은 유독 ‘3.1’이라는 날짜 중심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추진위원회는 삼일절을 ‘삼일독립선언절(약칭 독립절)’로 변경함으로써, 1919년 독립선언과 거족적 만세운동의 헌법적-국가적 의미를 분명히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1부 개회식과 2부 학술담화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 국민의례, 개회사 및 축사, 경과보고가 이어졌으며, 참석자들은 태극기 서명을 통해 추진위원 참여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어 ‘삼일독립선언절 노래’ 제창과 만세삼창으로 행사의 뜻을 모았다.
2부 학술담화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개혁 노선과 독립선언의 헌정사적 의미를 조망하는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발표자들은 3.1운동이 단순한 항일 시위를 넘어, 대한민국이 자유주의적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하는 사상적-정치적 기틀을 마련한 사건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추진위원회는 향후 학술 연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발족식은 삼일절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독립선언의 정신을 오늘의 시민사회와 연결하려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발기 선언문]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잔혹한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독립선언서”를 공표하여 자주독립국가의 국민임을 내외에 선포하며 전국적·전 계층적인 독립만세 시위를 결행한 날이었다. 이로써 성취된 3‧1독립혁명은 우리 민족 역사상 최초의 자유주의적 시민혁명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출범하게 했던 역사적 계기였다. 그리고 3‧1독립혁명은 1897년에 시작된 독립협회 운동과 1907년 대한신민회 결성 이후 내외 각지에서 전개되었던 모든 애국계몽운동과 자주독립 투쟁들이 결집되어 성사된 정치적 쾌거였고, 이후 지속되었던 여러 형태의 항일투쟁과 민족보존 및 실력양성운동의 역사적 연원이었다. 또한 3‧1독립혁명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 수립, 북한 공산집단의 6.25남침에 맞선 우리의 대한민국 수호투쟁 그리고 산업화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정치사적 배경이자 이념적 근거였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현대 정치사가 격동과 혼돈 속에서 이어지는 동안 3‧1독립혁명의 정신과 역사는 사실대로 학습되지 못했고 정치적으로도 온전하게 계승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 동안 3‧1독립혁명은 ‘3‧1운동’으로 격하되어 불리면서 대한민국의 머리이자 뿌리인 3‧1독립혁명은 망실(忘失)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충분한 정치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해 아직도 정파간 극단적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를 건강하고 효율적인 국가 경영 방식으로 정착시키는 일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이에 본 발기인들은 다음과 같은 취지(趣旨)와 행동을 결의한다.
원종성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