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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EF칼럼…한준상] 학습(學習/Learning)과 배움(Erudition)간의 집단무의식적 차이

세종시대 편찬된 석보상절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배움이라는 단어는 조선의 지배층이며 식자층들에겐 어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모화사상(慕華思想), 그러니까 당시 중국의 문물이나 사상을 숭모하고 따르는 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당시 문명은 동아시아의 질서에서 마치 현재의 미국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한민족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중국문화를 문명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던 조선의 유학자들은 우리 집단적 무의식의 표본인 배움을 중국인들이 쓰던 단어인 학습(學習)과 동일한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미리 그리고 다시 강조합니다만, 저들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학습이라는 개념은, 우리 한민족이 오랫동안 저들의 삶살이에서 써왔던 말인 배움이라는 단어의 온전한 뜻을 담고있는 그런 동일한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배움이라는 단어의 뜻을 저들 중화권에서 써오던 익히다라는 학습(學習)의 뜻으로만 제한시켜 이해하면, 우리 문화와 일상 삶 속에서 쓰이고 있는 배움의 다양한 뜻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우다의 뜻을 중국식이나 서양식의 익히다라는 뜻으로 제한시켜 설명하는 사람들은 학문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들은, 우리 한민족의 머리속에 지금까지 자리잡아온 배움의 개념에 대한 해석의 기준으로 유학(儒學)의 시조인 공자(孔子)를, 그의 사상이 담긴 논어(論語), 그리고 논어의 학이편에 등장하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문장을 꼽곤 합니다. 이 귀절을 접한 조선시대의 후학, 유학자들은 우리의 배움을 저들의 학습과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새로 접하고 그렇게 접한 것을 때때로 익(習)히면, 그것 또한 즐거운 것이 아니겠는가로 풀이되는 학이시습지에서의 익히는 일(習)을 우리 한민족의 삶살이에서 일상화된 배움과 동일한 뜻이다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일을 학습으로 제한시켜 이해하는 일은 논리적으로 틀린 일입니다. 한국인들의 집단무의식에서 작동하고 있는 배움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한 설명으로는 함량미달인 이해일 뿐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집단무의식 속에 자리한 한민족 형성 그 시기부터 자리잡아온 배움이라는 개념은 공자(孔子)가 언급한 그 정도로의 소극적인 뜻만 갖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논어에서 저들이 말하는 학습의 개념은 그저 일상에 즐거운 일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일 뿐입니다. 사실 공자가 논어의 첫머리에 자신의 삶살이를 즐겁게 만드는 일로 학습을 꼽았다는 표현은, 논어의 학이편 그 뒤로 뒤따라 나오는 묵직한 내용들을 보아 너무 가벼운 느낌을 주기만 합니다.

조선사회의 지배계급층을 이루는 유학자들이 논어의 학이시습이 강조하는 학습론을 필요이상으로 중요하게 해석하며 받드는 것은 조선왕조가 지녔던 중국을 공경해야한다는 모화사상의 주입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중국의 문물과 유학(儒學)의 가르침을 높게 평가하는 사대주의의 문화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 성립을 깃점으로, 당대 양반세력인 유가(儒家)들이 저들의 출세와 신분의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 과거제도를 국가 존립의 수단으로 채택했고, 그 중심에는 공자와 주자로 이어지는 유학의 기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공자가 논어에서 강조하고 강조했던 학이시습의 학습론은, 우리 말에서 지칭하는 배움에 대한 학문적 의미와 문화적 관습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탈해 버린 것입니다.

조선사회에서 양반계층이라면, 국가인재선발 제도인 과거시험에서 최상위권으로 뽑히는, 그러니까 급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과거에서의 급제가 관리로 나아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과거에서 급제가 가문의 영광이며, 출세의 통로였기에, 사대부 자제들은 오로지 과거에 붙기 위해서 공자가 강조했던 유학의 내용을 읽고 외웠던 것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통달하는 일을 출세의 지름길로 받아들이며, 공자와 주자의 기름침을 반복해서 학습했습니다. 유학(儒學)의 여러 경전의 글귀들을 반복적으로 외우고 외우는 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저들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유학의 경전들을 반복적으로 외우는 일이 저들에게는 학습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렇게 유학의 경전들을 가르치고 익히는 일이 저들에게는 배우는 일, 그 자체가 된 것입니다.

배움이라는 우리말이 형성되는 과정에 중국유학(儒學)이 끼친 문명사적인 영향을 온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배움을 학습과 동일한, 같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한민족이 상용하고 있는 배움이라는 말은 서양의 교육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육심리학에서의 러닝(learning)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것이라도 수긍할 수 없습니다.

중국인의 문화적 집단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문자인 학습(學習)이라는 개념이나 서양인들의 집단무의식, 특히 영어문화권의 집단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러닝(learning)이라는 개념은 사로 익힌다는 뜻인 습(習)과 서로 엇비슷한 개념으로 쓰여오기는 했지만,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집단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배움(eruditon)이라는 개념의 뜻은 저들과는 상당히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적 집단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배움의 개념은 중국식이나 서양식으로 표출되는 익힘(習)이 갖고 있는 그 이상의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계속)

 

한준상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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