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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책] 내가 사랑하는 시

 

 

 

 

가을을 맞이하여 오래된 시집 한권을 꺼낸다. 최영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시>이다.

시를 천천히 읽으며 내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는 계절이다.

어떤 시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 위로가 되고, 어떤 시는 지나간 사랑과 젊은 날의 열정을 떠올리게 한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감정이 때로는 한권의 소설보다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시 뿐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도 곁들여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주문’부터 푸시킨, 셰익스피어, 오비디우스, 소포클래스, 단테, 예이츠, 토마스 하디, 로버트 프로스트, 릴케를 걸쳐 현대의 음유시인 레오너드 코헨까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인간정신의 유장한 흐름을 한눈에 살펴보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게 작가의 의견이다.

▲썩지 않는 빵을 먹고
▲가을날
▲우리를 살게하는 많은 말들
▲코코아 한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당신과 나는 우연히 만났지

이렇게 여섯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55편의 시를 소개한다.

사랑과 죽음, 청춘과 노년, 아름다움과 선택이라는 주제는 서로 다른 시대의 시인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그 중 셰익스피어의 <소네트71:내가 죽거든>을 소개한다.

사랑과 시간, 아름다움과 소멸이라는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젊음과 아름다움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 시는 오랜 시간 남을 수 있다.

시가 시간을 이기는 방법은 현실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거든 싸늘하고 음산한 종소리를 듣고
종소리보다 오래 애도하지 마세요

가장 천한 구더기와 살려고 내가 이 천한 세상을 떠났다고
세상에 경고하세요
이 시구를 읽어도 시를 쓴 손을 기억하지 마세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그대의 향기로운 머리에서 잊혀지길 바라니까요
…………………………………………(중략)

두번째장의 가을날은 가을의 풍요로움과 동시에 저물어 가는 시간의 쓸쓸함을 느낀다.

젊음이 지나가고 사랑의 열기가 잦아들며, 한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되는 계절이다.

이 장에는 단테의 <사랑에의 길>, 예이츠의 <그대가 늙었을 때>, 토머스 하디의 <중간 색조>, 로버트 프로스트이 <산골 마을>, 릴케의 <가을날> 등이 있다.

그 중 예이츠의 <그대가 늙었을 때>는 계절속도와 닮은 인생의 속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사라진 뒤에도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

는지를 묻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는 마음과 한 사람의 내면까지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 않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아보게 되는 사랑의 깊이가 있는 것이다.

그대 늙어 백발이 성성하고 잠이 가득해.
난롯가에서 꾸벅 졸거든. 이 책을 꺼내 들고
천천히 읽으시기를. 그리고 한때 그대의 눈이 품었던
부드러운 눈빛과 그 깊은 그늘을 꿈꾸시기를
…………………………………………(중략)

또 한 편의 시를 소개하자면 릴케의 <가을날>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삶의 성찰과 연결해 생각하게 한다.

특히 릴케의 시에서 가을은 단순이 자연이 저무는 시간이 아니라, 한 해의 결실을 거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계절로 다가온다.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 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 주소서
…………………………………………(중략)

시의 매력은 짧은 언어로 긴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 편의 시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하게 한다. 사랑을 잃은 사람은 시에서 자신의 슬픔을 만나고, 삶의 갈림길에 선 사람은 시 속에서 선택의 의미를 생각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삶을 서두르지 않고 바라보는 일이다. 한 편의 시 앞에서 잠시 멈추고, 문장의 여운을 음미하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나의 경험과 연결해 본다.

그렇게 시는 책 속의 글자를 넘어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다.

김효선 KCEF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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