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출신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간결한 삶에 대한 에세이를 많이 알리고 있다. 특히 나이들어가는 삶에 대한 고찰을 많이 했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일흔 넷 이었을때 서른 일곱인 소노 아야코는 반환점을 지나고 나면 인생의 걸음이 비탈길을 내려갈 때처럼 조금은 편해질 것이라 믿고 늙어가는 자신을 훈계하고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칠십대가 되었을 때도 나이가 적지 않음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죽음에서 자유로운 연령이라고 믿으며 나이가 먹을수록 만년(여기에서 말하는 만년은 죽기전 1,2년전을 말한다.
그래서 만년은 모두가 다를 수 밖에 없다)이라는 의미가 짙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가치가 많아진다면 그런 즐거움도 즐길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이 책도 만년에 대한 준비로서의 의미를 갖고 집필했다.
이 책에서 감동받은 몇가지 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간소할 것
만년이 되면 물건을 관리하고 보관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에겐 각기 자기 그릇에 맞는 생활방식이 있다. 그릇이란 기량과 재능을 말하는데,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과 성격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다.
일본의 한 고승인 가모노 초메이는 암자를 만들면서 다다미 넉장 크기를 마련했다. 가모노 초메이는 교토대화재를 겪으며 그의 일생을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온갖 보물과 호화로운 주택과 인간의 생명이 단 한번의 불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인생관이 바뀌었다.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깨끗이 정리하고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세상에 대한 마지막 예의임을 알리며 자신과 관련된 기억마저 사람들에게 남겨주지 않고 모두 안고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만년에 대한 준비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을 하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최후 순간까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먹이를 스스로 조달하려는 본능에 충실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은 가장 가까이는 집안 일을 내 스스로 해내고 사회가 ‘하찮다’고 무시하는 일에 솔선 수범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걷는 것을 산다는 의미로 인식했다. 걷기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기본중에 기본이다.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바로 노년과 만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든다.
젊은이의 수가 줄어들고 고령자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더욱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에 뛰어듬이 결코 굴욕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생활의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만큼 나이를 먹고 늙는다. 다른 사람이 젊어 보인다고 겉발림 말을 해도 내 몸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외모도 신체기능도 저하되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몸이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있다. 생활의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영위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 만년까지 자신의 생활과 투쟁해야 한다.
몸이 움직이는 동안은 스스로 ‘먹이’를 찾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은 동물의 기본자세이다.
건강한 동물이라면 털이 닳아 빠지고, 눈이 침침해지고, 다리가 휘청거릴 때가지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 기본원칙을 죽기까지 명심해야 한다.
생활을 단순화 시켜야 만년에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작은 힘이 미치는 범위내에서 ‘분수’를 지킨다면 엄청나게 쌓인 업무에 짓눌리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균형잡힌 생활을 유지해야 만년의 시간을 정교하게 빛낼 수 있다.
관조하라
심신이 미약할수록 자주 분노한다.
요새는 세상 이치를 분별해야 할 중년에도, 세상 물정에 밝아야할 노년에도 별 것 아닌일에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입장과 견해만 절대적으로 신용하는 유아성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편협한 취향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경험이 쌓여 원숙해지면 나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 나름의 미학과 취향이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정의를 내세워 분노하는게 잘못은 아니나 그런 감정에만 연연하다간 모처럼 찾아온 개인적인 감동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노년과 만년의 지혜로써 짐을 내린다는 게 있다. 목표를 달성하고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이 아니다.
미완인 채 아무 답도 구하지 못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도 짐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너무 똑똑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도 있다.
이 세상은 교훈적인 이야기보다는 어리석은 자와 바보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고 오히려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
인생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더는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더는 고통을 참아내지 않아도 된다. 만년은 좋은 일 투성이다.
시원한 바람을 쐬듯 인생이라는 무게가 가벼워진다.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면서 부터 만년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년이 연장되는 만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만년을 준비하는 미학은 인생의 성찰이자 계획이자 실천이다.
김효선 KCEF 홍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