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EF타임즈 인터뷰] 지역사회교육운동, 사람으로 이어지다…정윤재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 원장/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말과 사람을 잇는 시민교육의 길

 

 

 

 

 

 

 

 

정치학, 시민을 만나다 ― 현장에서 시작된 시민교육의 여정

“모든 게 만남이에요. 현장이라는 게 만나는 거예요. 나, 현장 다니면서 정말 많이 배워요.”

정윤재 원장의 이야기는 그렇게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충북대학교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그는 학교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 그의 정치학은 시민리더십 교육의 현장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K-ACT)을 이끌며 시민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은 고향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평생 시민교육으로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대학과 교단, 연구실에서의 활동 또한 그 길 위에 있었다. 그 길의 출발에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있었다.

앞을 보지 말고 뒤를 봐라 ― 아버지에게 배운 삶의 지혜

정윤재 원장은 어린 시절 충남 유성의 과수원 집에서 자랐다. 형과 함께 새벽마다 밭에 나가 풀을 매는 것이 일상이었다. 끝없이 자라는 풀을 바라보면 어린 마음에도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거 하다가 보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다. 그럴 때는 앞을 보지 말아라.”

아버지는 앞을 보면 까마득해서 질려버리니, 대신 뒤를 돌아보라고 하셨다. 뒤를 보면 이미 깨끗하게 맨 밭이 보이고, ‘내가 이만큼 했네.’ 하며 위로를 삼으라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뒤에도 그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한 그는 시대의 현실과 마주했다.

 

 

 

감옥에서 만난 아이들 ― 서대문형무소에서 시작된 교육

 

 

 

 

 

 

 

 

 

1970년대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그는 결국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배정받은 곳은 18세 이하 소년범들이 있는 감방이었다. 둘러보니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어린 소년들이었다. 그는 문득 월남 이상재 선생이 떠올랐다. 독립협회 운동으로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옥에서 한글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그의 전기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여기 있을 때 뭐라도 해야지.’

그는 우락부락한 감방장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내가 사실은 서울대학교 다니다 왔는데 이번에 유신 반대 때문에 들어왔는데 보니까 다 동생들인데, 미안하지만 내가 한번 애들 내일 아침부터 가르쳐

주면 안 되겠습니까?”

뜻밖에도 감방장은 선뜻 허락했다. 그다음 날부터 감방은 작은 글방이자 서당이 되었다. 벽을 칠판 삼아 영어를 가르쳤다.

“I am a boy.”

아이들은 따라 읽었고, 한문도 함께 배웠다. 그는 간수에게 공책과 연필을 부탁했지만 들어온 것은 시멘트 포대를 잘라 만든 종이와 연필뿐이었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교육은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교육입니다.”

비록 시멘트 포대가 공책을 대신했지만 아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아쉬움이 하나 있다. 형무소에서 나온 뒤

곧바로 군에 입대했고, 휴가를 나왔을 때 감방의 아이들을 다시 찾아가보지 못한 일이다.

시민교육의 길을 만나다 ― 지역사회교육운동과의 인연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학업을 이어갔다. 졸업 후에는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근무하며 국제정치와 외교 현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했고, 미국 유학을 마친 뒤 충북대학교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1997년, 대전 육군교육사령부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 리더십을 연구하며 논문과 저서를 꾸준히 발표해 온 것을 눈여겨본 교육사령부가 그를 지휘통솔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것이다. 그는 자문회의에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했다. 군 생활 역시 청년들에게 건강한 시민의식을 기르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에서는 시민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자기 역사와 자기 동네를 배우고, 지역 행정과 지역의 역사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공부합니다. 책으로

배우고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일상이죠. 그렇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키워 갑니다.”

정윤재 원장은 시민교육은 어느 특정한 전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시절 은사님이셨던 한 교수는 대학은 학문의 전당인 동시에 학생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곳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옥스퍼드대와 하버드대, 도쿄대 등의 시민교육 사례를 연구하며 서울대학교 시민교육 강의안을 준비했다. 부총장으로 재직하며 이를 추진하려 했으나 학교의 동의를

얻지 못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 은사님은 돌아가시기 두 달 전, 점심을 함께한 자리에서 정윤재 원장에게 그 강의안을 건네주었다.

“그 자료를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육군교육사령부 자문회의에서도 이런 신념을 꾸준히 강조했다. 당시 자문위원에는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주성민 이사장도 함께하고 있었다. 자문회의를 마친 뒤,

주성민 이사장이 그를 찾아왔다.

“정 교수님, 우리 협의회에 오셔서 이사로 함께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시민교육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지만, 현장에서 시민교육이 어떻게

실천되는지는 협의회 활동을 통해 비로소 경험하게 되었다.

 

 

 

 

 

 

 

 

대화가 공동체를 만든다 ― 부모대화교육이 가르쳐 준 것

지역사회교육운동에 참여한 뒤 그는 한동안 협의회 성남지회장을 맡았다. 그곳에서 부모대화교육을 진행하며 대화가 한 가정을 바꾸는 힘을 직접 확인했다.

정윤재 원장은 공동체는 대화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되기 전에 먼저 대화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 훈련이야말로 민주 시민으로 가

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협의회 성남지회에서 부모대화교육을 진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부모가 그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기서 대화법을 배우고 아들과 다시 가까워졌습니다. 그 덕분에 남편과의 관계도 좋아졌어요.”

사연은 이랬다. 아들을 정성껏 키워 대학까지 보냈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는 서로 대화가 끊겼다. 집에 늦게 들어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함께 살아도

마치 하숙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만큼 관계가 멀어졌다고 했다.

그러다 부모대화교육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리고 조금씩 질문을 건네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방법을

아들에게 실천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물어보았다. 어색했던 대화는 조금씩 이어졌고, 끊어졌던 관계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같은 방법을 남편에게도 해보았더니, 남편과의 관계도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대화교육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대화의 출발은 질문입니다.”

그는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가 부모대화교육을 통해 대화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실천해 온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말을 듣고 질문하는 작은 변화가

가정을 바꾸고, 그런 변화가 모여 민주 시민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보았다.

말과 만남으로 이어지는 시민교육

“민주주의는 결국 말로 하는 겁니다. 독재는 우격다짐이지만 민주주의는 대화잖아요.”

그는 논어의 ‘눌언(訥言)’을 즐겨 인용했다. 말을 아끼고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가르침이다. 우리말에서도 같은 의미를 발견했다.

“‘마을’의 옛말은 ‘말’과 어원이 통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이 통해야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정윤재 원장에게 시민교육은 대화하는 능력을 기르며 시민의 자질과 시민리더십을 함께 길러 가는 과정이었다. 민주주의도 결국 그런 대화와 만남 위에서 자란다고 보았다.

시민교육에서 시민리더십으로 ―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의 새로운 실천

2000년대 초, 협의회 안에서는 지역사회교육운동의 발전 방향을 두고 논의가 시작되었다.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어가면서도, 더 좋은 이웃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시민교육의 가치를 함께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더 좋은 이웃,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 윤기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교육입니다.”

정윤재 원장은 시민교육이 한 개인에서 가정으로, 마을과 국가를 거쳐 세계 공동체까지 관심과 책임의 범위를 넓혀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런 논의 끝에 한국지역사회

교육협의회는 시민리더십포럼을 시작했다. 정윤재 원장은 시민교육을 주제로 발표했고, 이사회는 시민교육을 지역사회교육에 함께 담아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전국을

돌며 강연과 토론을 이어가고, 시민교육을 실천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모색했다. 이러한 논의와 실천은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으로 이어졌다.

“시민은 어느 도시에 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시민입니다.”

그는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시민으로서의 리더십을 실천하는 삶을 ‘시민리더십’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자유길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이 먼저 시작한 사업은 ‘서울자유길’이었다. 계기는 미국 보스턴 여행이었다. 독립운동의 발상지를 둘러보기 위해 찾은 보스턴에서 그는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을

걸었다. 역사 현장을 전문 해설사가 시민들과 함께 걸으며 설명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그는 3·1운동과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리 역사 현장의 아쉬움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독립선언 광장에는 정작 독립선언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다.

“독립선언 광장인데 독립선언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겁니다.”

보스턴에서 본 역사교육의 방식과 우리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만나면서,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구상했다. 해외동포와 청소년, 다문화가정은

물론 우리 시민 누구나 역사를 현장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자유길은 시민 해설사를 양성하며 역사해설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과 함께 역사를 읽는 자리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에서는 서울자유길 외에도 3·1포럼과 평전읽기, 하자 위즈덤 클럽 등 다양한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1포럼’은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3·1운동의 의미를 오늘의 민주주의와 시민정신 속에서 다시 생각하고,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민들과 나누는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전읽기’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박용만, 유관순 등 근현대사 인물들의 삶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인물의 업적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뜻을 모았는지를 읽으며 오늘의 시민정신을 생각한다.

“책을 읽어보면 멋쟁이들이에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없어요. 허술하게 생활해서 이름이 남아질 수는 없습니다.”

‘하자 위즈덤 클럽’은 전문 학위가 없어도 삶 속에서 익힌 재능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함께 배우는 시민 강사 양성 프로그램이다. 학교나 제도권 교육에서 얻은 지식뿐 아니라

, 한 사람이 오랜 세월 살아오며 몸으로 익힌 경험도 다른 시민의 배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자유길’에서 시민들은 역사의 현장을 걷고, 3·1포럼에서는 연구자와 시민이 함께 토론한다. 평전읽기에서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시민의 역할을 생각하고, 하자 위즈덤

클럽에서는 각자의 경험을 서로 나눈다.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시민이 배우는 사람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배움을 돕는 주체가 되는 자리다.

그는 평생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고민해 왔다. 교단에 있을 때도, 지역사회교육운동에 참여한 뒤에도 그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 고민은 지금도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의

여러 활동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정윤재 주요약력>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 원장(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현)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
△전 한국학진흥사업단 단장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학사)
△미국 University of Hawaii 정치학 박사

인터뷰 및 글: 김일규 편집국장 | 사진: 김주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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