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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책] 세월(THE YEARS)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은 한 가족의 삶을 따라가면서 개인의 시간과 가족의 변화, 여성의 삶,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순한 가족 소설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살아온 세월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묻는 소설이라고 볼수 있다.

1937년에 발표된 전통적인 가족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 이야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보다 한 가족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과 관계,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세월>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제목 그대로 ‘시간’과 ‘세월’이다. 사람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느 순간 흩어지고, 부모는 늙고 세상을 떠나며, 형제자매는 각자의 삶을 찾아간다. 결국 한때 단단해 보였던 가족도 세월 앞에서는 계속 모습을 바꾸어 간다.

소설은 영국의 한 중산층 가정인 패건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약 50년에 걸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가족의 중심에는 아버지 대령 패건이 있다. 그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성으로 가정을 이끌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까지 깊이 이해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같은 집에서 살아가지만 각각 전혀 다른 생각과 욕망을 품고 있다.

패건가족의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는다. 엘리너, 모리스, 마틴, 에드워드, 로즈, 밀리, 사라, 허미온 등 여러 형제자매들의 삶이 서로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엘리너이다. 엘리너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가족의 변화와 부모의 죽음, 형제자매들의 결혼과 독립을 지켜보면서 자신 역시 나이를 먹어간다. 로즈는 보다 적극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선택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려 한다. 사라는 가족 안에서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에드워드는 학문과 지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지만, 자신의 내면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한다.

이처럼 형제자매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가족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거대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어린아이였던 사람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든다. 젊었던 삶은 늙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가족이 함께 모였던 집에는 점점 빈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영국 사회 역시 변화한다. 빅토리아시대의 엄격한 사회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달라진다. 제1차 세계대전과 사회적 변화 역시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세월>은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한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월>을 읽다 보면 처음에는 이야기가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실제 삶도 영화처럼 극적인 사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하고,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늙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울프는 바로 이러한 평범한 시간 속에 인생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월>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동안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한 장면에서 어린아이였던 인물이 다음 장면에서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다. 인간은 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시간을 직접 경험하기보다, 흔적을 인물들의 얼굴과 관계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을까”
“어릴 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지금도 중요한가”

<세월>은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작가는 인간의 삶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 결혼과 직업 같은 외적인 사건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면이다.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외로울 수 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패건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가족이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서로 다른 욕망과 상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작가는 여성의 삶에 주목한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교육과 직업, 경제적 독립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 여성에게 결혼과 가족은 중요한 삶의 선택이었지만 그곳이 반드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속 여성 인물들은 이러한 시대적 현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가족을 돌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삶은 얼마나 희생되어야 하는가.
사회가 변화하면 인간의 삶도 진정 자유로워지는가.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월>에서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패건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집은 가족의 역사가 쌓이는 장소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부모가 늙으며 가족 구성원들이 떠나고 다시 모이는 모든 과정이 집이라는 공간 안에 축적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집의 의미도 달라진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험이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오랜만에 찾아가면 그곳은 여전히 같은 장소인데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사실 변한 것은 집이 아니라 그 집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공간과 기억, 시간을 연결한다.

<세월>이라는 제목은 매우 상징적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10년은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실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늙음도, 자신의 늙음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세월을 단순한 상실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사람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할 수도 있다.

젊었을 때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별것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그때는 대수럽지 않게 지나쳤던 한마디, 한사람의 존재가 훗날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세월>은 우리에게 삶을 거대한 성공의 연속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특별한 사건보다 수많은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김효선 KCEF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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