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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택호 칼럼] 담장 너머의 배움터를 일군 교육 사상가, 아산 정주영 회장의 유산과 미래

기업가를 넘어 평생교육과 지역공동체의 개척자로

아산 정주영 회장을 기억할 때 많은 이들은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불세출의 기업인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가장 깊은 울림과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닌 분야는 바로 평생교육과 지역사회교육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에게 배움이란 특정 시기나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이 배움의 터전이어야 하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하나로 이어져 주민 모두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건강한 교육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물질적 풍요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을 키우고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길에 주목했던 그의 철학은 시대를 앞서간 교육적 통찰이었습니다.

불씨를 지핀 일화: 미시간 플린트시의 기적에서 시작된 결단

1960년대 후반, 정주영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Flint)시의 지역사회학교 사례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방과 후 닫혀 있던 학교 문을 활짝 열어 학부모와 주민들이 모여 교양과 기술을 배우고, 세대 간 소통을 통해 슬럼

화되던 지역사회를 활력 넘치는 배움터로 바꾼 실화였습니다.

이 영상을 본 정주영 회장은 깊은 감명을 받으며 “우리나라에도 바로 이러한 풀뿌리 교육 운동이 절실하다”는 확신을 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절대적인 자원 부족과 열악한 교육 여건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뜻 있는 교육자들과 손을 잡고 1969년 한국지역사회학교후원회 창립에 앞장서며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서울 재동초등학교 복도의 작은 책상 하나에서 시작된 이 소박한 출발은 대한민국 평생교육과 지역사회교육 운동의 거대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산의 진심 어린 실천: 송파구 방이동 사옥 출연과 KCEF의 든든한 주춧

지역사회교육 운동이 단발성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연구와 활동 공간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1988년 재단법인 한국지역사회교육연구원(현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KCEF)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서 재단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특히 정 회장은 지역사회교육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도약할 수 있도록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재의 건물을 매입하여 재단에 전격 출연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정적 기부를 넘어, 평생학습과 공동체 교육을 실천하는 활동가와 주민들이 언제든 모여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는 배움의 터전을 영구히 마련해 준 역사적 결단이었습니다. 방이동 지역사회교육회관은 이후 수많은 시민 리더십 양성과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산실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 지역사회교육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KCEF재단이 나아갈 미래: 초개인화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교육

우물물을 마실 때 처음 그 우물을 판 사람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오늘날 KCEF가 이어받은 아산의 정신은 더욱 막중한 사명으로 다가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개인화와 저출생, 지역 소멸, 공동체 해체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일구어 놓은 굳건한 토대 위에서 KCEF재단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미래 지평을 넓혀가야 합니다.

첫째, 학교의 담장을 넘어 지역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열린 학습 플랫폼을 확장해야 합니다. 세대 간 단절을 잇고 고립된 개인을 연결하는 관계 중심의 평생학습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둘째,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시민 리더십의 체계화와 K-정신문화의 확산입니다.

아산이 강조했던 도전과 나눔, 공동체적 연대 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미래 세대가 스스로 삶과 지역을 가꾸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셋째, 디지털 전환 시대에 부합하는 포용적 교육 모델 개발입니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외 계층 없이 모든 주민에게 닿을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와 인문학적 성찰이 결합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선도해야 합니다.

아산 정주영 회장이 뿌린 지역사회교육의 씨앗은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KCEF재단은 그의 숭고한 교육 철학을 나침반 삼아, 배움과 나눔이 일상이 되는 따뜻한 공동체 세상을 향해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안택호 前 안동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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