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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가 평생학습을 돕는 시대가 아니라, 평생학습을 강제하는 시대

우리는 오랫동안 평생학습을 ‘원하면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설명해 왔다.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고,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며,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는 선택의 언어였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일과 생활의 방식 자체를 빠르게 바꾸기 시작하면서 평생학습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성인은 배우고 싶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지식과 업무 방식이 빠르게 낡아지기 때문에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AI는 성인의 학습을 편리하게 만든다.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며, 글쓰기와 기획을 돕는다. 하지만 동시에 AI는 재학습의 속도도 높인다. 조직은 새로운 도구를 빠르게 도입하고, 익숙한 업무는 자동화되며, 이전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얻던 판단을 시스템이 대신 제안하기 시작한다. ‘AI를 활용하면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의 뒤에는 ‘AI 때문에 더 자주 배워야 한다’는 현실이 함께 존재한다.

이 변화는 평생교육의 오래된 전제를 다시 묻게 한다. 성인교육에서는 경험을 중요한 학습 자원으로 보아 왔다. 성인은 이미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해석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한다. 그런데 기술 변화가 너무 빨라지면 경험은 자산인 동시에 재검토해야 할 대상이 된다. 오래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더 나은 판단을 보장하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AI가 빠르게 제시하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학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앞으로의 평생교육은 ‘AI 사용법’을 가르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성인이 AI의 답을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고, 틀릴 가능성을 의심하고, 근거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자기 판단을 다시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단순한 디지털 활용 능력보다 ‘검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평생학습의 핵심 역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기주도학습의 의미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습자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AI를 선택했다고 해서 학습의 모든 과정이 자기주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료 탐색, 비교, 요약, 설명, 판단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했다면 학습자는 과정의 관리자일 수는 있어도 사고의 주체로 남아 있는지는 별도의 질문이 된다. AI 시대의 자기주도성은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가’뿐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직접 판단했는가’까지 포함해야 한다.

평생교육기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중장년층에게 생성형 AI 사용법을 알려주는 단기 강좌만 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가 직업과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 가운데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지 판단하며, 잘못된 정보와 그럴듯한 답을 검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재취업과 직무교육에서도 ‘AI를 쓸 줄 아는가’뿐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면서도 자신의 전문적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 문제는 교육격차와도 연결된다. 앞으로의 AI 격차는 단순히 유료 서비스를 사용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만이 아닐 수 있다.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누군가는 답을 받아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답의 근거를 확인하고 다른 관점과 비교한다. 접근의 격차 다음에 활용의 격차가 왔다면, 그 다음에는 ‘판단의 격차’가 나타날 수 있다. 평생교육은 바로 이 격차를 줄이는 공공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AI 시대의 평생학습은 더 이상 배움을 권하는 낭만적인 구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배움은 기회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의무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교육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적응하라고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새로운 지식을 검증하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AI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평생교육은 오히려 인간에게 남겨야 할 학습과 판단의 영역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재형 교육학 박사 / 진로닥터 미래교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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