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보면 철학자들의 이미지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카페에 앉아 커피와 술을 마시고, 사랑에 빠지고, 친구들과 논쟁하고, 재즈를 듣고, 때로는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들은 삶에서 멀리 떨어져 철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의 삶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았던 사람들이었다.
영국의 작가 세라 베이크웰이 쓴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하이데거, 후설을 비롯한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의
사상과 삶을 한편의 이야기처럼 풀어낸 책이다.
책의 중심 무대는 파리의 생제르맹 데 프레 거리이다. 당시 이곳의 카페에는 작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했다. 철학은 강의실이나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와 카페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특히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이들에게 철학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학문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가?’,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에 본래 정해진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그들의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 책은 실존주의 철학을 단순히 사상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사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설명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자유를 삶으로 실험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가운
데 한 사람은 장폴 사르트르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하는 존재였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본질이나 운명이 인간의 삶을 완전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자유는 결코 편안한 선물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이러한 실존주의적 자유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험했다. 그녀는 여성에게 주어진 전통적인 역할과 사회적 기대에 질문을 던졌고, 여성의 삶 역시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부아르의 철학은 단순한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모든 철학자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그들의 사적인 삶을 얘기하며 흥미롭게 펼쳐낸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와 불안, 죽음, 시간에 대해 깊이 파
고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반면 카뮈는 삶의 부조리에 주목했다.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세계가 반드시 우리에게 의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카뮈가 보여주는 답은 절망이나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의미가 보장되지 않는 세계에서도 살아가고,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실존주의는 어둡고 무거운 철학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오히려 삶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있다.
이 책이 흥미롭게 읽혀진 또하나의 이유는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던 점이다.
그들은 훌륭한 철학적 사상을 남겼지만 언제나 자신들이 주장한 대로 완벽하게 살아간 것은 아니다. 사랑과 관계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정치적 선택을 두고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 사이의 관계와 갈등도 그러하다. 특히 정치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서로 비판하고 멀어지는 모습은 철학자 역시 시대와 현실속에서 고민하는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의 철학자들은 박물관 속에 박제된 위인이 아니다. 실수하고 흔들리고 사랑하고 갈등하면서도 계속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실존주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가 결국 이 책이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역할을 맡는다. 가족의 기대, 사회의 기준, 나이에 맞는 행동,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마음대로 사는 자유와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고 그 결과까지 받아들이는 책임의 자유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젊은 시절에만 필요한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에게 더 깊게 다가올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와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제목에 등장하는 ‘칵테일’은 이 책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철학은 반드시 무겁고 어렵게만 다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처럼 느껴진다. 카페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철학을 읽고, 한 잔의 음료를 앞에 놓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듯 책을 읽는 것이다.
세라 베이크웰은 철학자의 사상만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인간적인 삶과 시대적 배경, 인간관계와 논쟁을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20세기 실존주의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철학이란 결국 삶에서 멀리 떨어진 어려운 지식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
한 질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길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늦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실존주의자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답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지만 결국 마주하게 되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한때 무엇을 꿈꾸었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선택할 시간이 남아 있다면, 삶은 지금부터도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실존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는 이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남은 삶을 조금씩 그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책이면서 동시에 삶에 관한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