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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EF타임즈 인터뷰] 지역사회교육운동, 사람으로 이어지다…첫번째 만난 사람: 주성민 명예이사장[2]

사람에서 사람으로, 지역사회교육운동 56년

전국 곳곳에 피어난 한국의 스미스 부인들

1971년, 주성민은 이상주 교수, 김갑순 교장, 최계주 교장과 함께 미국 프린트시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스미스 부인’의 이야기는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알파벳 ABCD도 몰랐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가정문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스미스 부인은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면서 간판의 ‘빵’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을 때 느낀 기쁨. 계속 교육을 받아 지금은 카운슬러가 되어 무너져가는 가정을 바로 세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순간 주성민의 머리에 번뜩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이제부터 가서 할 일은 스미스 부인을 만드는 거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선생님으로 만들자. 전문가로 만들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처음 재동초등학교가 이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 혜화, 갈현, 연가 등 서울시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학교마다 간사가 배치되었지만 학교가 늘어남에 따라 간사 한명이 몇 개씩 학교를 담당하였고 학교마다 ‘지역사회교육운영회’가 생겼다. 회장, 부회장, 총무, 홍보위원장 모두 평범한 주부들이었다. 이제 임원들이 생겼다. 지금은 강사 위주의 단체가 됐다면 그때는 지역사회학교 임원 위주의 단체였다. 그 임원들을 모아가지고 이들에게 자원지도자 훈련을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훈련된 임원들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역할이 사장되기 시작하였다. 그 자원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 사람들이 모여 ‘귀연회’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1988년 새롭게 현장에 보급할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할 부모교육지도자, 예절교육전문가, 글쓰기독서지도자 등 프로그램지도자를 양성하게 되었다. 학교의 학부모 임원들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지도자로 양성이 된 것이다. 이는 지역사회학교 임원들 중심 운동에서 프로그램지도자 중심 운동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게 되었다. 1980년데 서울 중심의 지역사회학교운동은 지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유랑극단

“서울에서만 하지 말고 지역으로 가자.”

이것이 시·도 단위의 협의회를 만든 계기였다. 시·도 협의회장들은 최고의 교장이었고 최고의 회장들이었다.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전국을 돌았다.

“그때 우리가 ‘유랑극단’이라 불렀어요. 그렇게 북 치고 장구 치고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정말 최고의 호응도였어요. 그때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1박 2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석양이 지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유랑극단의 노래 소리가 해질녘의 노을로 퍼져들어 갔다. 행복이었다.

시련과 전화위복 – 지역사회교육회관 건립

정주영 회장이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낙선이었다. 그때 학교에 ‘지역사회학교’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이 선거에 낙선을 하고 나니 교장선생님들이 우리 간판을 다 떼어낸 것이었다. 그동안에 해놓은 일이 완전 허사가 되니 정말 기가 막혔다. 당시 남편이 공직에 있다는 이유로 주성민은 협의회에서 해직이 되었다. 시련의 시기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주성민은 다시 들어와 지역사회교육운동을 살리기 위하여 정주영 회장에게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시·도 협의회를 시·군 협의회로 조직을 개편할 것과 둘째, 건물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회장님, 삽질하게 해주세요.”

정주영 회장은 아무 말 없이 가 있으라고만 하셨다. 바로 전날 어느 유명한 영화배우가 송파에 건물을 지어놓고 건물을 사달라고 왔던 것이다. 다음 날 연락이 왔다. 정주영 회장이 주소를 내밀며 거기를 가보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너무 예쁜 건물이었다. 타이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CMS의 기적 – 한 사람의 후원에서 모두의 참여로

2001년 전국 34개 도시에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 사무실을 마련해 주시고 실무자 인건비를 지원해 주시던 정주영 회장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모두가 지역사회교육운동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이 회장이 된 주성민은 이 만큼 도와주셨는데 이것도 이어가지 못하면 안된다 생각하며 전국협의회들이 자립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혜를 모았다.

“그때 캐치프레이즈를 한 분의 후원자에서 다수의 후원자로 걸고, 많은 회원을 모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무국에서 CMS 제도를 제시했다. 이것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CMS로 등록을 하면 회비가 들어오고 받은 회비를 다시 그 지역으로 돌려주었다. CMS 회비가 들어오면 10% 정도는 중앙협의회의 운영비로 활용하였다. 새 이웃도, 교재 발간 비용도 다 그 예산으로 충당하였다. 이는 단순한 회비 제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지역과 중앙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 한 사람 한 사람의 후원이 전국의 운동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주영이라는 한 분의 거대한 후원자에서 작은 후원자들로, 그것은 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의 주인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CMS는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였다.

당신 멋져 – 강사들에게 전한 철학

주성민은 강사들에게 특별한 인사법을 가르쳤다. ‘당신 멋져’였다. 이 네 글자에 자신의 교육 철학을 담았다.

 – 당당하게 살자.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다.

 – 신나게 살아라. 신바람 나게 살아라. 신바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신난다, 신바람’도 있지만 ‘새 바람에 신바람’도 있다. 항상 새로움을 찾아가라.

 – 멋쟁이가 아니라 멋있는 사람이 되라. 멋쟁이는 아무나 될 수 없지만 멋있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멋’, 그것은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주면서 살자. 이 사회가 너무 이기려고만 한다, 가지려고만 한다. 그런데 주자.

사람들은 주성민의 강의를 좋아했다. 누군가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강의를 맛있게 하세요?” 맛있게. 그 표현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강의가 맛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배움이 즐거움이 된다는 의미였다.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

사람들은 주성민을 보고 ‘지역사회교육운동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말이 듣기가 좋았다. 그런데 사실, 이 운동하면서 어려웠다. 힘들었다. 따라 하는 게 아니었다. 찾아 하는 거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했다. 명함을 주기가 어려웠다. 뭐 하는 곳인지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학교 현장은 매번 같은 대상이지만, 우리 현장은 매번 새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이론도 없었고, 정답도 없었고, 선험자도 없었고 만들어서, 길을 만들면서 하는 것이었어요.”

주성민은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 덕분이었고,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는 덕분에 살았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

“속도보다 방향이다. 방향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실패를 안 해요. 감사하면서 하는 사람은 성장이 빨라요. 불평을 하면서 하는 사람은 성장이 더뎌요. 재지 말고 해라. 너무 조이면서 하지 마라. 좀 여유 있게 해라. 즐기면서 해라. 내가 즐기면서 했어요. 사진을 보면 웃는 장면이 많더라고요. 잘 하려고 하지 마라. 그냥 재미있게 해라. 할 만큼만 해라. 너무 그냥 잘해가지고 어쩌려고 그러지 마라. 그러면 힘들어진다. 행복하게 일해라. 그러려면 일이 나한테 맞아야 된다.”

주성민은 후배들에게 균형의 중요성을 말한다. 속도보다 방향, 성과보다 과정, 완벽보다 행복. 그것이 그녀가 후배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조언이었다.

사람으로 이어진 지역사회교육운동

“우리는 이론도 없었어요. 돈도 없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있었어요.”

주성민 명예이사장의 이 한 문장이 지역사회교육운동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돈도 없고, 이론도 없었지만,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 비빔밥처럼 각기 다른 맛을 지닌 사람들이 섞여 하나의 맛을 만들어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이 사람을 키우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 주성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지역사회교육운동의 이야기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이야기다.

인터뷰 및 글 : 김일규 / 사진-영상 : 이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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