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KCEF 장학사업 5회차 최종 대면 워크숍 개최… 교사·학부모·전문가 20여 명 참석
현장 사례 기반 갈등 진단 및 ‘제도 운영과 신뢰 문화 구축’이라는 양 날개 협력 방안 도출
오는 10월 27일 KCEF 이사위원 정책콜로키움서 토론 결과 제안 및 학교 자치 실천 지속
“제도는 이미 있다, 작동시킬 신뢰가 없을 뿐…교사-학부모, ‘나부터’ 작은 실천으로 길을 찾다”

학교 현장의 갈등과 공교육의 위기, 인공지능(AI)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혼란 앞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탓하는 대신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자리가 열렸다.
(사)홍익민주주의연구원과 (사)이니티움브릿지가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KCEF, 이사장 곽삼근)의 2026 KCEF 더좋은공동체 장학사업으로 공동 주최한 ‘묻고
함께 길을 여는 학교 – 학부모와 교사, 함께 길을 찾다!’ 워크숍이 10월 17일 서울 서초구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서초플랫폼에서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회기를 마쳤다.
지난 9월 5일 시작한 워크숍은 회기마다 다른 길을 살펴 왔다. 독일의 학급 학부모 모임(엘터른아벤트), 독일 아이헨도르프 학교와 서울 오주중학교의 학교 자치-3주체
생활협약, 가정친화적 학교,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학부모 네트워크가 차례로 다뤄졌다.
첫 회기와 마지막 회기는 대면으로, 나머지는 온라인(줌)으로 진행됐으며, 45명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서도 논의가 이어졌다.
마지막 회기는 그동안의 논의를 모아 ‘무엇부터 함께 시작할 것인가’를 정하는 대면 워크숍으로 열렸다. 전-현직 교사와 교수, 연구자, 학부모 등 20여 명이 참석해
3시간 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현장의 세 목소리 – ‘아이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어른들의 시선’
토론은 세 편의 현장 사례에서 출발했다.
20년 차 고교 수학 교사인 석연욱 부천 중흥고 교사는 대입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비중이 커지면서 학교가 ‘교육기관’에서 ‘평가기관’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업이 배움보다 평가 준비의 과정이 되면서 교사는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육자라기보다 ‘심판이나 판결자’의 역할을 하게 되고, 학교는 ‘교육적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이의를 제기하거나 요구를 전달하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석 교사는 교사들이 ‘모래알처럼’ 1년 함께 일하다 흩어지는 구조 속에서 세대 간 경험과 노하우도 이어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학교부적응을 겪은 자녀의 학부모이자 강사, 미술치료-심리상담 연구자는 ‘같은 아이, 다른 시선’이라는 글로 세 입장에서 본 학교를 이야기했다.
처음 학교에 불려갔을 때는 아이의 문제점만 들었지만, 지금의 담임교사는 문제가
생기면 먼저 연락해 아이의 마음과 집에서의 모습, 학교가 해 볼 일을 함께 의논한다고 했다.
해당 학부모는 “아이는 여전히 같은 아이입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어른들이 소통하는 방식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학교부적응을 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련 구룡중학교 교사는 ‘문제아’로 불리던 제자를 품은 경험을 나눴다.
가정불화 속에서 잦은 사건을 일으켜 다른 교사들이 담임 맡기를 꺼리던 학생의 담임을 자청했고, 긴 상담 끝에 아이가 털어놓은 가정사를 들은 뒤 ‘방어적으로 버텨내며
학교에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기특했다’고 했다.
학교 아이들과 동네에서의 낙인효과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전학을 갔지만 이 교사는 연락을 끊지 않았고, 이후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성실히 이어 가며 일터에서
마감까지 맡을 만큼 신뢰를 얻은 제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는 담임에게 거센 민원을 제기하던 학부모도 교사가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면 오해를 풀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못나고 못되고
정이 안 가 미움받는 학생들도 속사정을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고 사랑으로 품지 못할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교사에게도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는 자세와 대화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사례는 한 지점에서 만났다. 평가와 관리가 앞서면 아이를 이해하기 전에 판정하게 되고, 같은 아이도 어떤 시선을 만나느냐에 따라 ‘문제 학생’이 되기도, ‘자라는 아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참석자들은 행정과 평가, 민원 대응에 쫓기는 교사에게 한 아이를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남아 있느냐고 되물었다.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 작동할 바탕이 없다
이날 토론에서 가장 크게 공감을 얻은 진단은 ‘제도는 이미 있다’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미 상당한 법과 제도가 갖춰져 있는데, 그것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3월 시행된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다.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담임 혼자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살피고, 학교 안에서 도울지 전문기관과
연결할지 판단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회의와 회의록, 전문기관 연락 등 ‘또 하나의 업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산까지 지원되는 교원학습공동체도
정기적인 만남의 시간 확보 어려움, 토론 문화의 미숙 등으로 형식화되기 일쑤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그 원인을 학교 구성원 사이의 상호 신뢰와 존중이라는 바탕이 무너진 데서 찾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좋은 제도도 방어 수단이나 업무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입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모든 교육 활동을 빨아들이면서 어떤 정책도
힘을 잃고, 갈등은 깊어지고, 현장은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우려였다. 가정의 양육과 돌봄 책임까지 학교로 넘어오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법-제도와 신뢰 문화는 ‘양 날개’… 출발은 ‘나부터’
이날의 결론은 두 갈래를 함께 붙잡는 것이었다.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다듬는 일과, 그 제도가 작동할 신뢰와 존중의 문화를 학교 안에서 만들어 가는 일이
‘양 날개’처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법과 제도도 힘을 쓰기 어렵다면서도, 문화를 바꾸는 출발점은 남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는 학교를, 학교는 학부모를, 교사는 학생을 탓하는 고리를 끊고 ‘나는 무엇부터, 옆 사람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자는 것이다.
이어 각자의 자리에서 한 달 안에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나누었다. 이날 나온 실천 과제는 다음과 같다.
△학부모: 내 아이 문제는 민원에 앞서 담임교사와 공식 채널로 먼저 의논하기, 교
육주체로서 권리를 넘어 책임 있는 교육 동반자로서의 인식 전환과 학원 일정보다 학교의 배움 시간과 약속을 먼저 존중하기
△교사: 평가자의 잣대를 넘어 학생의 배경과 마음에 먼저 귀 기울이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좋은 소식도 먼저 전하기, 교원학습공동체 연구문화를 통한 수업 전문성으로
공교육의 자존심 지키기
△학교장: 위에서 내려온 정책을 우리 학교에 맞게 걸러 적용하고, 교사들이 함께할 시간과 업무 분담을 마련하기. 교원학습공동체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수업 나눔과
생활지도 노하우를 잇는 협력의 장이 되도록 뒷받침하기
△학교 공동체: 학년 초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만드는 3주체 생활협약과 학교 철학과 운영 방향을 나누는 학급별 ‘한국형 학부모의 밤’ 같은 공식 소통의 자리 제도화
참석자들은 이런 약속이 교육청이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이 직접 만들 때 힘을 갖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학교와 학부모 간 신뢰의 출발은 서로를 교육주체로서
인정하는 자치이며, 그 판을 깔고 학교자치가 자랄 수 있도록 돕는 학교장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과 정책으로 잇는다
학교 혼자서는 어렵다는 데에도 공감이 모였다. 후원 기관인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은 지역과 연계한 학부모 교육과 학교 지원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학교 밖 상담-연구 전문가가 개인정보와 연구 윤리를 지키며 학교와 협력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제도의 날개도 함께 다듬는다. 이날 토론지에는 직장인 학부모의 학부모 교육 및 학교 참여 시간 보장, 학급 단위 학부모-교사 협의회 제도화, 교원학습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행정업무 간소화와 연수 지원 등이 과제의 예로 제시됐다.
주최 측은 이날 토론 결과를 정리해 오는 27일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KCEF)이 여는 2026 이사위원 정책콜로키움 ‘우리시대 사회문제와 KCEF의 과제찾기: 좋은 학교
만들기를 중심으로’에서 제안하고, 보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거창한 개혁보다 내 자리의 한 걸음
참석자들은 학교의 갈등을 한 번에 풀 만능 처방은 없다는 데 공감했다. 대신 토론
지의 맺는 문장은 이날의 결론을 이렇게 요약했다.
‘제도는 안전장치이고, 관계와 문화는 일상의 토대다. 학부모와 교사는 서로를 설득할 상대가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교육 주체로서의 동반자다. 구조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를 탓하는 대신, 내 자리에서 작은 것부터 함께 시작한다. 그 기반은 학교 자치다.’
박성희 독일 괴팅겐대학교 교육학 박사·전 공주대학교 연구교수
진영아 홍익민주주의연구원 사무총장·전 오주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