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교육을 접목해 약 15년 동안 주부들을 글쓰기·독서지도자로 양성했다. 이후 한국자율교육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교육 현장을 소개했고,
이화여대 졸업생들의 ‘이화교육 네트워크’에서도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 편집자 주 >]
“교육은 더불어서 내 안의 보물을 찾아가는 길”
30년의 교직과 20여 년의 지역사회교육활동…”글쓰기를 배우려다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조남숙 선생님이 전하는 읽기와 쓰기, 그리고 공감의 가치

‘한 사람의 노인은 그 지역의 도서관’이라는 말이 있다.
30년간 이대부중에서 국어교사였으며, 1990년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독서·글쓰기 지도자 양성을 시작하며 전국에 수많은 독서전문가를 키워내신
91세 조남숙 선생님을 만나며 떠오른 문장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조남숙 선생님은 50여 년의 교육 현장에서 모아온 자료를 펼쳐놓았다. 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이 쓰고 그린 작품, 지역사회교육
협의회 강의 자료, 수강생들의 글이 담긴 책들이었다. 자료에는 강의 장소와 참여자의 이름, 그들이 남긴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배움과 성장을
오래도록 간직해온 기록이었다. 교육 현장을 떠난 후에도 그들의 기록을 귀하게 간직해오시는 조남숙 선생님의 가치관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대화는 그 기록에서 시작해 청소년 시절의 기억,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 계기, 읽기와 쓰기의 의미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
조남숙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 때 전쟁을 겪었다. 부산 피난지에서 다시 만난 담임
김규환 선생님(작곡가)은 산 위에 작은 칠판을 걸어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조남숙 선생님의 기억 속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세계지도를 그려내던 교사이자,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준 스승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자신에게 건넨 한마디였다.
“바늘끝 만큼도 빈틈이 없는 남숙 양, 빈틈이 필요해요.”
학생들이 서로에게 말을 적어주던 롤링페이퍼에 선생님이 남긴 문장이었다. 조남숙 선생님은 그 말이 평생 자신에게 여백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학생 시절의 조남숙 선생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전쟁 이후 서로 다른 곳에서 공부하다 모인 학생들에게 교사가 야단을 치자, 학생마다 배운
내용과 교과서가 달라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직접 이야기했다. 고3 때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대대장이 되어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 시간에 단 위에 서서
구령을 하는데 학생들이 출석부로 맞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부당하다고 느껴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선생님에 혼이 나느냐”고 소리쳤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선택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자신의 특성과 적성이 무엇인지를 몰라 고민했다. 그러던 중 도덕을 담당하던
황응연 선생님의 수업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서 선생님에게 상담을 부탁했다. 꽃이 핀 학교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 선생님이 교육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남숙 선생님이 교육학을 선택한 이유는 사람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마다 어떤 사정이 있고,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 소설과 수필을 읽는 까닭도 그 안에 다양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교육의 길에서 1959년에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부터 30년 간 이대부속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59년 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하러 나간 이대부속 중고등학교에서 ‘독서발표회’를 주제로 학생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한 것이 교장선생님의 눈에 띠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국어교사로 발탁이 되었다. 조남숙 선생님은 단순히 국어의 기능 교육뿐 아니라 인성의
토대를 만드는 가치중심 교육을 펼쳐냈다.
수업을 위해 한 해 동안 단원마다 어떤 자료와 활동을 활용할지 계획해서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어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기행문 수업에서는 여행 계획
서를 만들게 했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 왜 가고 싶은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비용은 얼마나 들고 어떻게 마련할지를 생각하도록 했다. 외국 여행을 계획한다면 해당
나라의 대사관에서 자료를 찾아오게 하기도 했다. 글쓰기는 실제 삶을 탐색하고 자기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
책으로 삶을 만나고, 글로 생각을 세우다
조남숙 선생님은 독서가 삶에서 마주치는 질문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았다. 가족이나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쉽게 답을 얻지 못하는 일이 있다. 책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관계를 만나며 자신의 경험을 넓힐 수 있다. 독서는 이러한 간접 경험을 통해 자기 삶의 방향과 구도를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가 글을 작성하는 시대에도 직접 생각하고 쓰는 일이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생각이 처음부터 분명하지 않더라
도 직접 써나가며 사고의 틀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쓴다는 조남숙 선생님은 나이가 들수록 기록의 필요성을 더 느낀다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날의 일도 일기 한쪽에 남은 짧은 기록을 보면 다시
떠올라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편지를 쓰는 과정에는 상대방과의 교감도 담긴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카드와 편지지, 봉투를 고르고 어떤 말을 전할지 생각하는 시간부터 이미 관계가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편지의 문장에는 그렇게 쌓인 마음이 함께 담긴다. 조남숙 선생님은 2015년 80세가 되던 해에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토대로 『편지』 (터득골 출판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40여 년 동안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 중에서 63통을 골라서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가족은 물론 법정스님, 박완서 선생, 이해인 수녀, 스승이신 안인희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친구 및 선후배들과 나눈 교감과 마음의 성장들이 담겨 있다.
책에 수록된 1991년 법정 스님의 편지에는 조남숙 선생님이 당시 하고 있던 학부모 교육에 대해, 부모의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 우리 교육을 개선하는 데 중요하다는 취지로
격려한 내용도 남아 있다. 조남숙 선생님의 활동이 단순한 ‘독서기술 지도’가 아니라 부모와 시민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가치교육’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AI 시대의 교육에서도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강조했다. 글을 읽고 뜻을 파악하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힘이 있어야 AI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요즘 신문
기사에서 교육의 문제로 이해력 부족이 자주 거론되는데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언어의 많은 부분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요즘은 한자 교육이 부실해서
이해력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사회로,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조남숙 선생님은 30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55세에 퇴직했다. 당시 교육정책의 변화와 건강에 무리가 있어 퇴직을 결심했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싶었다고 말했다.
퇴직 후에는 첼로와 합창, 한국 춤을 배우고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했다. 박물관대학에 다니며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학교에서 일하느라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을 즐겼다.
그러다가,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 참여한 계기는 서울협의회 회장이었던 친구 백명희 교수의 권유로 인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시간에 매여 살아왔기에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말에, 친구는 ‘너는 이기적이야’ 하며 질책했고, 좋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것이 세상으로 퍼져나가 세상을 더 좋아지게 한다는 ‘작은나무야 작은
나무야’의 책구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가진 교육의 경험을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권유로 시작한 지역사회교육활동은 어린이 교육에서 시작하여 성인 지도자
교육으로 이어졌다.
재동초등학교에서 실시한 여름방학 ‘매미학교’에서 아이들이 만든 결과물을 계기로 독서·글쓰기 지도자교육 과정이 마련되었고, 이후 20여 년 동안 강의를 이어갔다
. 9개월간 진행되는 글쓰기독서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에서, 조남숙 선생님은 도입부 8시간 동안 현장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교육의 가치와 지도자의
자세’를 강의했다. 교사는 아이들을 물가로 인도하는 사람이며 결국 물을 마시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아이들이 스스로 열린 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이 느낌과 감동을 글로 적게 할 것인지 인도하는 방법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생생한 결과들을 소개했다. 이대부속중학교에서의 30년의 경험과
제자들의 삶이 ’ 지역사회교육‘의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피드백을 모은 『글쓰기‧독서지도가 마음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
(2001년) 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수강생들은 이 교육에 참여하며 다음과 같은 소감들을 쏟아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 하다‘
’글쓰기를 배우려다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빈 가슴 텅 빈 영혼을 메우려는 새싹이 움트는 듯 새롭다‘
’깨달음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반세기를 넘긴 내 인생을 다시 거꾸로 쌓고 싶다 ‘
’저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치관을 심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조남숙 선생님의 교육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독서과 글쓰기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모든 학습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고,
인생관을 바꿔 놓았다. 1991년 처음 지도자과정을 시작할 즈음 당시 광화문 서울협의회 교육장은 교보문고와 마주보는 현대해상 건물 2층에 있었는데 교보
문고에서 약속을 했던 사람이 화장실을 가기위해 2층에 올라왔다가 약속시간이 남아 잠깐 듣고 가자하고 들어온 것이 그만 약속을 취소하고 끝까지 과정에
참여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흡입력과 감동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 학습자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생님과 교류하며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
청소년과 성인을 가르칠 때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고 답했다.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의 소양이 중요하며, 나이에 관계 없이 배움
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로의 보물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
조남숙 선생님은 교육이란 공감대를 형성해 서로의 개선과 성장을 돕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뿐 아니라 학생과 학생 사이에도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 바탕에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보물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능력,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주는 마음도 훌륭한 보물이다.
혼자서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함께 이야기하고 생활하고 책을 읽으며, 자신 안에 있는 그 보물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매년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시간에는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 내가 생활하면서 너희들의 삶의 보물을 함께 찾아가도록 하자. 너희는 너희 자신이 스스로 학습 시간을
통해서 나에게 어떤 재주가 있나를 찾아보고, 나는 나대로 너희들 하나하나 속에 무슨 재주가 있는가 찾아보겠다. 우리는 1년 동안 그런 다음에 맨 마지막에 가서 또
그걸 한번 정리해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1년 동안 시를 100편 외우게 하고, 마지막에는 직접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시화전을 열고, 그 피드백까지 정리하면서
친구들의 보물을 발견하고, 자신의 보물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시 100편을 외우도록 했을 때 아이들은 모두 ‘그걸 어떻게 해요 ~‘ 하며 울상을 지었지만 1년 후에 모두가 100편의 시를 외웠을 때 아이들은 그 희열과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음을 깊게 넓게 만들어 주었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칠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시의 시계로 들어가 상상하는게 기쁘다’
‘괴로움이 풀리고 깨끗하고 무언가 꽉 찬 기분이다’
‘나의 마음 속에 조그만 꽃씨를 심어주고 간 것 같다.’
‘슬픔, 기쁨, 외로움 등을 알게 되었다.’
‘시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두 그곳에 모인 것 같다.’
‘아이들과 말할 때 말이 술술 나와 즐거웠다.’
‘시를 암송하니 친구들과 말들이 부드러워졌다.’
‘나쁜 말들로 꽉 찼던 내 마음이 확 풀리는 것 같아 즐거웠다.’
‘외우는 것에 자신이 없었는데 시 100편을 외우니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들은 모듬별로 100편의 시를 서로 외울 수 있도록 점검해 주고, 시화집과 시화전을 펼쳤으며, 독서발표회를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창의력도 생기고
리더십도 발휘하고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대부속중학교 창립 50주년을 맞아 졸업생들이 만든 문집에는 얼굴도 모르는 졸업생이 ‘조남숙 선생님께’ 라는 글을 써서 올렸다. 아무런 꿈도 없던 자신에게 꿈을
심어주신 분, 창가에 서서 알퐁스도데의 ‘별’을 읽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 자신있게 선생님 앞에 나갈 수는 없으나 졸업을 하면서 ‘우주’라는 시화집을 만들어 선생님의
책상 위에 놓고 왔다는 그 학생(최진원)은 자신이 이제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글을 문집에 실었다. 조남숙 선생님의 제자들은 변호사, 검사, 작가,
영화감독 등등 각계각층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시절 선생님의 그 가르침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곤지암의 자택을 찾곤한다.
배움과 교육에는 퇴직이 없다
이 밖에도 조남숙 선생님은 교사로 재직 시, 이대 국문과에서 ‘국어교육론’을 강의했고, 문교부의 국정 교과서 국어과 심의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자율교육학회
(한국니일연구회) 부회장으로 아이들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교육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현재는 이대 교육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이화교육 네트워크에서 더
나은 교육의 방향을 찾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조남숙 선생님은 AI 관련된 강좌에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랜 교육의 시간을 지나온 지금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지닌 모습은, 교육이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인 동시에 자신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평생 다른 사람의 보물을
찾아주고자 했던 교육자의 삶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및 글 사진 : 조두리
[조남숙 선생님은 1959년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연세대 도서관학과 특수과정을 수료했으며, 1970년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약 30년간 이대부속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이대 국문과에 ‘국어교육론 ’을 강의했고 국정교과서 국어과
심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90년 교직에서 퇴직한 뒤 친구인 백명희 교수의 권유로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의 프로그램 지도자 과정에 자신의 국어교육
경험과 독서·글쓰